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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심재옥] 김밥 이야기


오늘은 3학년이 곤충학교로 현장체험학습 가는 날. 서진이의 김밥을 쌌다. 재료의 대부분이 생협 재료이다 보니 맛도 때깔도 심심하다. 바베큐햄이 아닌 걸 투덜되거나 또 몇개 남겨 올지도 모른다. 


나는 결식아동이었다. 학교 12년 동안 소풍 날 도시락을 딱 한 번 싸갔다. 4학년 봄소풍 때, 바로 위 언니가 한 개 40원인가 하던 달걀 한 개를 사와서 물을 부어 양을 불려서 계란말이를 해줬다. 물을 부으니 두 배쯤 커지는 계란말이를 보면서, '물을 좀 더 많이 부을 걸' 속으로 아쉬워했었다. 부푼 가슴으로 나중에 밥 먹으려고 도시락을 열었는데, 계란말이는 식어서 쪼그라들었고 반찬통 바닥에는 물이 흥건하게 고여있었다. 


그 초라한 도시락과 물만 붓는다고 계란의 양이 무한대로 커지지 않는다는 깨달음이 그날, 가슴 어딘가에 깊게 새겨진 모양이다. 살면서, 세상엔 공짜로 되는 건 없다는 걸 느낄 때마다 그때 쪼그라든 계란말이가 생각난다. 


오늘도 여전히 김밥을 많이 만들었다. 가난했던 우리 엄마도 손이 커서 그랬는지, 배고픔이 사무쳐 그랬는지 음식을 많이 한다. 큰 언니와 셋째 언니는 합리적인 수준이고 나랑 둘째 언니만 손이 큰 걸 보니 이건 그냥 내림도 아니다. 성격이거나 욕심이겠지. 아무튼 점심도 김밥이다. 


경비 아저씨께 드릴 김밥과 시금치 유부 된장국을 담아 나가는 남편 손에 들려 보냈다. 그냥, 나는 늘 아저씨들께 뭔가 미안하다. 빚 못 갚은 사람처럼 심적으로 약간 주눅들어 있다. 


감시단속 노동자라고 최저임금의 90%만 주는 건 말도 안된다. 게다가 경비 아저씨들이 감시단속 일만 하는 것도 아니다. 택배 받아 놓기, 재활용 분리, 음식물쓰레기 관리, 주차장 차 밀어주기, 설문지와 서명 받기, 온갖 허드렛일과 자질구레한 주민들의 부탁을 의무처럼 하고 있는 분들께 우리 사회는 너무 비정하다. 아파트 경비직은 감시단속 노동에서 제외시켜야 한다. 


그냥 내 미안한 마음빚이나 때때로 이렇게 메꾸고 있다.


심재옥 (노동당 전국위원, 구로당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