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

[김상철] "복원된 청계천 보고 즐거우셨습니까?"

한 때 그는 잘나가는 상인이었습니다. 오랫동안 터왔던 거래처가 있었고, 옆집의 일을 제 일처럼 알아서 챙겨주던 이웃 상인들이 있었습니다. 상가 앞을 오가던 수많은 사람들이 가게로 발길을 돌려 들어 올 때면 언제나 그렇듯 선한 미소로 맞이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 그 상인이 있는 곳은 손님을 맞이하는 점포가 아니라 차가운 구치소입니다. 벌금 700만원을 내지 못해 자기 가게에서 연행된 지 오늘로 13일째입니다.


그 상인은 다름 아닌 전 청계천상인협의회 대표였던 안규호 회장입니다. 아마도 안규호 회장이 상인들을 대표해서 회장직을 맡지 않았다면, 아니 그보다는 전체 상인들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처지는 나아졌을지도 모릅니다. 시작은 바로 이명박 전 시장이 시작한 청계천 복원이었습니다. 당시 청계천에서는 안 회장을 비롯한 수많은 상인들이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업종별 상인회만 십여 개에 이를 정도로 성업 중이었고 많은 사람들의 터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멘트로 가려져 있던 청계천을 복원한다는데, 그것도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당선된 시장 앞에서 상인들의 오랜 삶은 위태롭기만 했습니다. 어느 상인들은 과거 동대문운동장 부지에 마련된 풍물시장으로, 그리고 다른 상인들은 서울시가 새로 짓기로 한 대체상가로 이주를 하기로 했습니다. 바로 그 대체 상가가 지금 ‘가든파이브’로 불리는 곳입니다. 안규호 회장은 상인들을 대표해서 이명박 전 시장을 자주 만났습니다. 서울시에서 펴낸 청계천 복원 자료를 보면 수백차례 상인들을 만나서 설득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상인들의 이주와 대체 상가 건립과 관련된 사항은 대부분 안규호 회장과 관련되었습니다.


  
▲ 2008년 한국경제TV에서 방영된 경제매거진의 한 장면. 당시 이주상인에 대한 대책에 대해 이명박 전시장이 구두로 약속한 녹취록이 공개되었다. 당시 서울시는 문서화된 합의문 대신 “내 말이 곧 약속”이라는 구두합의 만을 강조했다.

안규호 회장은 새로 지어질 가든파이브가 청계천 이주상인을 위한 대체상가이기 때문에, 적어도 청계천에서 장사하던 만큼 장사할 수 있도록 이주하는 것이 타당한 이주대책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시장에서 오세훈 시장으로 바뀌면서 청계천복원추진단은 ‘동남권이주사업추진단’으로 변경되어 운영되다가 2007년에는 해체되기에 이릅니다. 서울시가 2003년에 청계천 상인대표와 간담회에서 밝힌 ‘상인대책 전담기구’가 가든파이브 완공도 전에 사라진 것입니다. 이때부터 애초 이주에 합의해준 상인들은 제 발등을 찍었다는 자괴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당초 ‘이주 가능한 수준’으로 공급하겠다던 가든파이브는 기존 청계천 상인으로서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고액이었습니다. 더구나 허허벌판에 상가만 덩그라니 있는 상황이었으니 청계천 상인들이 가지고 있던 상실감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상인들을 대표해서 협상에 참여했던 안규호 회장은 바로 입주를 할 수 없었습니다. 특권을 요구해도 모자를 판에 다른 사람들이 한 둘 입주를 하는 상황에서도 ‘실질적인 상권 회복’ 전까지 비싼 임대료와 관리비를 징수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 바람에 2009년에 5차 분양시기가 되어서야 가든파이브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다른 분양시기에는 요구하지도 않았던 ‘신청 보증금 200만원’이라는 어이없는 조건을 수용하면서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이후 주변 상인들과 힘을 모아서 현재의 가든파이브가 애초 서울시가 약속했던 것과는 다르게 운영되고 있으며, 오히려 이주한 상인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 과정에서 선행칭찬본부라는 이권단체가 개입하게 되고 가든파이브 관리단과 SH공사는 선행칭찬본부의 문제를 고발하면서, 이런 저런 서명용지에 사인을 했던 안규호 회장까지 공범으로 포함시킵니다. 불찰이었으면 불찰일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간 안규호 회장이 해왔던 활동과 내용을 보건데 이것은 선행칭찬본부에서 했던 이권추구와는 분명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안규호 회장에서 돌아온 것은 700만원의 벌금이었습니다. 이미 장사가 되지 않아 임대료를 밀린 상황이었고 SH공사에 의해 명도소송이 진행된 상황이었습니다.



지난 2월 가든파이브를 찾았을 때 안규호 회장은 감춰두었던 소주 페트병을 꺼내서 한잔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손수 끓인 오뎅탕을 덜어주며 말했습니다. “내가 한동안 칼을 품고 다녔어. 나라도 그렇게 죽으면 사람들이 돌아봐 주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그 안규호 회장이 지금 구치소에 갖혀서 하루 일당 5만원으로 700만원의 벌금을 납부하고 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안규호 회장이 수감된 지 일주일도 안돼 그가 오랫동안 장사를 해왔던 가게는 철거가 되었습니다.


  
▲ 이 곳에는 안규호 회장이 판매하던 여성복 등 의류가 잔뜩 진열되어 있었고, 밥을 해먹던 전기밥솥과 제게 건냈던 소주 페트병이 함께 있었을 겁니다. 안규호 회장이 수감된 지 10일만의 일입니다.

얼마 전 청계천의 생태복원을 위한 마스터플랜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관련 자료들을 꼼꼼히 살폈습니다. 혹시나 청계천 상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미 청계천 복원 때문에 집단으로 이주해야 했던 상인들은 잊혀졌습니다. 이제 가든파이브에서 실제로 장사하며 살아가는 이주 상인들은 불과 100명도 되지 않습니다. SH공사는 자신들의 방침에 따르는 상인들은 임대사업자로 바꿔주고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은 내쫒는데 혈안입니다(이 표현이 문제가 된다면 소송을 걸어주십시오).


하루 하루 변해가는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이제는 멸종 직전의 공룡처럼 되어 버린 청계천 상인들, 그리고 그들의 대표로 활동했던 어느 늙은 상인대표의 모습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청계천 상인들을 내버려 둔다면 ‘청계천 복원’과 같은 사업은 이제 불가능합니다. 어느 누가 행정의 말에 신뢰를 보내며 자신들의 생계를 버리겠습니까. 그리고 그것이 설사 자연하천으로 복원된 청계천이라 하더라도 그 천변을 따라 걷는 것은 그 자체로 비윤리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머리 숙여 부탁드립니다. 안규호 회장을 구치소에서 꺼내 주십시오. 이미 황학동 상인들이 나섰습니다. 노동당과 전노련 등 단체들도 힘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제발 더 늦기 전에 안규호 회장이 나와서 청계천 상인들의 문제를 가지고 계속 싸울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140일 중 하루만이라도 시간을 벌어주십시오. 그동안 복원된 청계천이 즐거우셨습니까. 그러면 그곳에서 장사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즐거울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안규호 전 회장 후원계좌: 우체국 016857-02-005858 (예금주: 유산화)


김상철 (노동당 서울시당 사무처장, 영등포당협)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