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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재랑] 생계와 신념: 품위를 지키기 위하여

몇 가지 의문이 있었다 : 애초에 세액공제 대상이 아닌 소득의 사람들은 어떻게 후원을 해야 십만 원짜리 세액공제 해준 사람만큼 이쁨을 받을까, 선한 마음씨의 사람들이 모두 활동을 한다면 그 활동가들은 누가 후원 해주나, 대학생들에게 인문/사회과학을 가르치는 생계는 갸륵하게 여기면서 중/고딩들을 대상으로 그리 하는 것은 왜 천박하게 여기는가. 아무런 연관성 없는 이 질문들을 생계, 라는 단어로 엮는다. 뚜렷한 대답은 없다. 그냥 의문이다. 마땅히 그래야지, 라고 하면서도 사람들 앞에서 빌빌 거릴 수밖에 없는 가난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 영 서럽다. 열일곱 때는 당비로 오천 원을 냈는데 열여덟에는 천 원을 냈다. 중졸 백수의 삶을 어엿삐 여겨주신 한 당직자의 배려로 그리 지냈다. 당비를 올리는 것은 번번이 실패했다. 비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엄마의 오 만원, 십만 원 정도로 일 이 주를 살아내는 삶을 몇 년간 살다보니 예기치 못하게 터지는 사건들에 골머리를 썩이느라 당비 따위는 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그래서 역시나 예기치 않게 들어오는 수입의 10%를 시당에 특별당비로 내면서 개겼다. 주일 예배는 못 가더라도 십일조는 내야 우리가 언젠가는 교회를 이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헛소리 같은 심정이었는데 얼마 전 당원 정보에서 특당비 납부 내역을 보니 하나도 기록이 되어있지 않았다. 내게 이리도 불성실한 당직자들을 욕하고 싶었는데 이미 정의당으로 떠나버려서 붙잡고 따질 수도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냥, 세액공제만으로 큰소리 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환급받을 세금을 내본 적이 없어서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른다. 예전의 상사였던 노옥희 위원장께서 대학 입학을 축하한다며 내게 용돈을 주셨을 때, 이것을 대체 어찌해야할지 몰라 그냥 당에다 바쳤다. 돈 들어오면 특당비 내야지, 꼭 내야지 하면서도 이게 뭐라고 벌벌 떨고 있나 싶어 가끔은 허망하게 느껴지지만, 맥날이나 베라나 아니면 그 어딘가에서 일하고 있는 야무진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내가 느끼는 마음은 사실 부채감이라기보다는 계급적 두려움에 가깝다. 그러니까 아무 때나 털썩 망하는 것이 별로 신기한 일도 아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어디에서라도 서로를 끝끝내 붙잡고 있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 혹은 미련 같은 거. 그나마 특당비라도 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고마워 졸졸 따라가다 보니, 내 생계는 논술학원 어드메에 서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누가 뭐래도 내게 생계는 곧 신념이다. 그것은 일종의 품위, 와 관련한다. 가난이라는 단어가 우리 생에 찾아들 때, 그것은 보통 절대적 빈곤보다는 생의 품위를 앗아가는 것으로 나타난다. 고 최고은 작가 사망 사건이나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 등 도처에 존재했던 비극은 자신을 둘러싼 생계가 생의 품위를 위협할 때 일어났다. 이들에게 일용직이라도 했어야지라든가 기초수급을 신청했어야지라는 말들은 그 자체로 마침내 가난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품위의 회복을 좌절시킨다는 점에서 공허하다. 그들에게서 ‘글’을,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을 치르고야 마는 ‘염치’를 앗아간다면, 그들에게 대체 무엇이 남겠는가. 가난에서 누군가를 구제하는 일이란 그러므로 구휼 활동이 아니라 당신의 자존감을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활동가들의 생계 역시,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사회의 품위를 위해서도 소중해 마지않다. 나는 그러므로 생계와 신념은 양립하는 것이지 대척 관계에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리고 ‘보투’를 소홀히 하는 사람이야말로 단호히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부터 구파발로 나간다. 면목에서 구파발이라니 벌써부터 그 출근 거리가 아득하기만 한데, 내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에서 논술 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아무쪼록 감사한 일이다. 내 쓸모가 사회적으로 과대평가 받는 것이 거 참 우습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가진 재주로 돈벌이를 시작했으니 생계에 대한 최소한의 품위는 지키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 품위를 지키며 살지 못하는 이들의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적어도 돈을 버는 동안에 가난을 입에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차피 우리가 망하는 건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기왕이면 돈을 벌게 되었으니 올해는 당비도 올리고 10만 원짜리 후원금도 넣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게 여전히 선연한 것은, 지금껏 당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품위를 함께 지켜내야 한다는 당원으로서의 책무와 끊임없이 나를 아찔하게 만드는 이념적 두려움이다.



이재랑 (노동당 울산시당 중구당협)